여기에 쉼표하나

from 여름journal 2010. 3. 14. 23:50


만화책을 반납하러 집을 나서자
시큰한 비 냄새가 다리를 휘감았다.
오후 언젠가 잠시 내렸던 걸까. 

비가 내리는지도 모른채 시간을 보냈구나.
하루종일 집에만 있지는 않았다.
아침에는 장도 보고 왔고, 동네 미용실 시세도 알아볼겸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했다.

이런식으로 누가 묻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혼자서 질문하고 
스스로 변명하는 일이 요즘에는 익숙해져 버렸다. 
자립, 오늘따라 집요하게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다.

저녁에는 카레를 해먹자고 등심까지 썰어 와놓고는
결국 야채 참치 통조림을 반찬 삼아 저녁을 먹었다.
참치가 좀 질기다 싶더니 웬걸 유통기한이 정확히 11일 후다.
자취생에서 직장인으로 옮겨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반응은 여전하다.
간신히 세이프로 먹어서 다행이라는 기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통조림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 인생의 유통기한은 이미 지나버린 건 아닌가 걱정된다.
글로 옮겨 놓고보니 웬 청승이냐 싶지만,
내가 준비한 것들, 겪고 배워온 소소한 경험들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싶다.
이대로도 좋은걸까, 여러번 되물어 보게 된다.
정말 괜찮을까.

지나온 금요일, 외근을 하는 도중에 
타업체 사람들과의 잡담에서 우연히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주말에는 기어코 플스3를 사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던 나는
격하게 창피했다.
게임기 생각하고 있던것도 그렇지만, 
더 이상 꿈을 좇지않는 내 모습이 놀랍고 한심해서.

주말동안 계속 피해다니다가 다음 주가 몇분 남지않은 지금에서야 
문제를 대면해본다.
물론 마땅한 수가 금새 떠오를 리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게임기 구입을 뒤로 미루는 것 정도일까.
어이없을 정도로 소극적이고 치사하지만 
이렇게라도 의욕을 당겨보면서 시간을 비집어보려 한다.
이 작은 하루가 새로운 시작이 되어주길.
늦었으니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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