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from 여름journal 2007. 12. 21. 23:32
전역이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그대로 따온 말로서
제대가 맞는 표현이라고 들었는데
그 반대였다.

네이버에 물어볼수도 없고, 별 수 없었던거다.
지긋지긋한 군생활 같으니라고.

아무튼 전역증을 받았다.
위병소를 나서는 기분이 다르진 않았지만
군복을 상자에 담아 옷장 위쪽으로 던지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못된 악귀라도 봉인한듯한 기분일까.

서른쯤되는 고참들을 보내보면서
나 역시 작별 합주와 함께 전역할때가 오면
펑펑 울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별의 아쉬움도 있었고
쌓인 추억도 많았지만,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나름의
청사진을 그려둔 탓일지도 모르겠다.
강해지자고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도
나는 금새 변하는구나.
단순해서 그런가.

후임들 역시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나팔 소리에 정성이 깃들어 있었기에
떠나는 마음이 따뜻할 수 있었다.
나의 2년은, 연주를 듣고 실력이 좋다 나쁘다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그 정도는 구분 지을 수 있을만큼 길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부대에 남아있을법한 내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창환이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창환이의 불안감을 알것만 같았고
그것을 해소해 줄 생각은 없었다.

창환이도 강해져서 돌아오겠지.
바톤은 내가 이어 받았다.

-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하루사이 많이 수척해진 느낌이셨지만
엄마는 여전하셨다.
나의 전역을 짧게 축하해 주시며
부모님은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 해주셨다.

병원에서 부모님이 CT촬영을 기다리시는동안
나는 이모와 함께 국민 건강 보험 공단에서
엄마를 중증질환자로 등록하였다.
등록하였을때 암환자의 경우,
보험이 닿는 치료비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수술은 아마도 서울에서 받으실 것 같다.
나는 집을 지키도록 결정되었기에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3년 정도 방치되어 있던 내 방과
발코니의 책장을 뒤집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30% 정도 완성되었다.

밤이 쉽사리 찾아온다.
자유를 맞은 첫날밤 치곤 묘하게 서먹하다.
창가에선 아파트에 가리어 달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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